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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지식룸 (Knowledge)

에릭슨(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 (Psychosocial Development)로 이해하는 전생애 인간발달

by Dr.Yun in FL 2023.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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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은 아동학, 교육학, 심리학 분야를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빠질 수 없는 고전적 이론이다. 나도 학부에서 아동학을 공부하면서부터 현재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논문을 발표하기까지 이 이론을 무수히 접했고, 가르쳤고, 또 그 내용을 내 논문에 이론적 배경으로 응용했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어느새 중년이 되어 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노년이 된 부모님들을 바라보며 이 이론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묘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에릭슨의 발달 이론을 좀 더 현실감 있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신뢰 대 불신 (Trust vs. Mistrust): 0-18개월 

아기는 어떤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난다. 즉,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존을 이어갈 수 없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태어난 후 첫걸음을 떼고, 혼자 걸을 수 있는 것을 중요한 발달 과업으로 간주하는데, 그 이유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생존의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포유류 동물들이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걷는데 반해, 인간은 혼자 걷기까지 1년 남짓한 시간이 걸린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들이 있지만, 최근 스웨덴 신경생리학 연구팀에 따르면, 인간의 상대적으로 큰 뇌의 질량과 직립보행이 걷기를 배우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도록 한다고 밝혔다. 즉, 인간은 태어나서 스스로 두 발로 걷고, 두 손을 이용해 음식을 먹기까지 누군가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영아기 시기에 결국 이러한 생존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주 양육자인 부모다

100%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 누구에게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어떤 느낌일 것 같은가?


영아기 시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주양육자의 헌신적 보살핌을 통해 "세상은 믿을 만한 곳이구나!" (Trust)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 시기에 부모는 기본적인 수면시간부터, 개인의 자유시간까지 대부분을 포기하고 아기의 생체리듬에 맞추어, 3-4시간 간격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아기의 상태를 보살펴야 한다. 언제까지? 그들이 스스로 걸을 수 있고, 두 손을 이용해 음식을 집어 먹을 수 있을 때, 이를 대략적으로 생후 18개월로 본다. 
 
생존적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영아기에, 자신의 의지도 아닌 채로 만들어져 이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누군가의 헌신적 보살핌을 받을 수 없다면, 결국 그 아이의 마음속에는 세상에 대한 불신(Mistrust)이 자리 잡게 된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2. 자율성 대 수치심과 의심 (Autonomy vs. Shame & Doubt): 18개월 - 3세 

걸음마기 아기가 두발을 이용해 스스로 걷고, 두 손을 이용해 물건을 잡거나 놓는 신체적 기능이 획득하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능은 습득한 것이다. 자연히 이 시기가 되면 아이는 스스로 걸으며, 자신의 행동반경을 확장하고, 물건을 잡고 놓고 하는 과정을 통해 내 것과 남의 것의 경계도 경험하게 된다. 즉, 아이는 스스로 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긴다. 하지만, 이 시기 아이들은 대소근육의 발달이 급격히 이루어지기는 하나 아직 혼자서 하는 것들에 매우 미숙하다. 걷다 넘어지기 일쑤고, 물건들을 계속 망가뜨리고, 집안 곳곳을 어지럽힌다. 비록 나쁜 의도는 없더라도 말이다.

부모가 아이의 행동들을 끊임없이 제한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시기 아이들은 미숙하지만 스스로 하는 경험을 통해 자율성을 발달시킨다. 이때 주양육자가 해야 할 역할은 안전상의 이유로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바운더리를 만들어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스스로 탐색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험한 물건이 들어있는 서랍이나 찬장은 문고리를 연결해 쉽게 열지 못하도록 하거나, 식탁 모서리 등에 안전쿠션을 붙여 혹시 아이가 넘어져 뾰족한 곳에 부딪히더라고, 큰 사고가 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 등이다. 
 
특히, 이 시기에 중요한 과업이 바로 "배변훈련 (Toilet Training)"이다. 배변훈련이 자율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이유는 아이가 스스로 자기 몸의 기능을 자유의지와 선택을 통해 통제할 수 있는 기회를 배우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인지하여, 자신의 의지와 신체 조절 기능을 통해 스스로 배변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부모가 생각하는 기저귀를 떼기 이상의 의미이다. 이때, 부모가 지나치게 통제적이거나 엄격한 태도로 아이들의 배변훈련을 하게 되면, 아이들은 자율성 및 자기 통제감을 상실하게 되고, 이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수치심과 의심 (Shame & Doubt)으로 자리 잡게 된다. 즉, 아이들이 자신의 몸에 대한 자유의지 마저 얻지 못한다면,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은 충동인 수치심과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3. 주도성 대 죄의식 (Initiative vs. Guilt): 3-5세 

취학 전 프리스쿨 시기에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이 시기 아이들은 부모 없는 독립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 활동들을 하는 과정에서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된다. 예를 들어, 혼자 점심 급식이나 간식을 먹어야 할 때도 있고, 선생님이 짝을 지어준 친구와 그룹활동을 하거나, 줄을 지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게 독립성이 요구되는 순간에 아이들은 스스로 활동 계획을 짜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들은 주도성 (Initiative)을 확립해 나간다. 그런데 만약 이 시기에 부모나 교사가 아동의 선택이나 계획에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고, 자신들의 선택이나 계획을 강요한다면, 아동은 자신의 원하는 것, 즉 욕구에 대한 죄책감 (Guilt)을 느끼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고 활동해도 괜찮을까?

이 시기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시도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선택대로 해도 괜찮을까? 그런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신이 신뢰하는 어른들로부터 긍정적이고 지지적인 반응을 받지 못한다면, 이는 아이들의 주도성 발달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최근에 많은 육아서적들에서 "자기 주도적인 아이로 키우기"를 주제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자기 주도성은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그를 수용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가 스스로의 선택에 긍정적인 경험을 쌓아나가며, 그에 대한 책임도 있음을 배워나갈 때 발달할 수 있다. 
 

4. 근면성 대 열등감 (Industry vs. Inferiority): 5-13세 

학령기 아동들에게 주어진 과업은 바로 삶에 필요한 무수한 지식과 정보들을 배우고 익혀나가는 것이다. 읽기, 쓰기, 말하기, 셈하기 등 인간으로서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기본 지식들을 쌓기 위해, 이 시기 아이들은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끊임없이 배운다. 이 시기는 발달 상에서도 배움에 최적화되어 있는 시기로, 여건상으로도 어떤 책임이나 의무에서도 자유로우며 오직 인간의 기본 소양들을 익혀나가는 배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기이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획득한 아동들은 근면성(Industry)을 보이기 시작하지만, 자신의 노력에 대해 비난이나 처벌을 받은 아이들은 자신이 부모나 교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느꼈을 때, 자신의 능력에 대한 열등감(Inferiority)을 발달시킨다

나는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지나친 교육열로 인해 이 시기가 왜곡되는 경우가 있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은 즐겁고 신기한 경험이다. 모르던 글을 읽을 수 있고, 글을 쓰고, 말하기를 배우며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심지어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면 다른 나라 사람들과도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배움을 통해 그들의 세상은 더 확장되고, 원한다면 자신의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읽고, 인터넷의 정보들을 습득하며, 자신의 세상을 더 크게 확장하고 더 넓은 세상과 연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배움의 목적이 성적이나 대학진학이라는 잘못된 프레임으로 연결된 탓에,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조차 없는 구조로 형성되었다. 이를 통해, 이미 학령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성적을 잘 받기 위한 학원과 학교 사이의 줄타기를 하며, 배움은 즐거운 경험이라는 본질을 잃게 만들고 있다
 

5. 정체성 대 혼돈 (Identity vs. Role Confusion): 13-21세

13은 영어로 Thirteen. 드디어 숫자에 Teen이라는 글자가 붙으며, 10대 청소년기로 진입하는 나이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발달과업은 바로 정체성의 확립이다. '정체성'의 사전적 정의는 "변하지 않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이다. 즉,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존재의 본질이 있는데, 이를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바로, 청소년기 정체성의 확립 (Identity) 단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정체성의 확립은 하루 아침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들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고 깨우치며 나를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이 에릭슨의 발달 과업을 가장 거스르도록 설정된 구간이 바로 청소년기이다.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을 탐색하고, 발견해야 할 시기에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라는 제도적 시스템에 갇혀, 스스로를 탐색할 자유시간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 입시지옥에서 생활한다. 이 시기에 정체성의 확립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청소년들은 정체성의 혼란 (Confusion)을 겪는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등에 관해 깊이 있게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채, 대학 진학이라는 문턱에 서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닌, 부모가 원하거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에 맞추어 자신의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하고, 나중이 되어서야 그들이 어떠한 실수를 하게 되었는지 뒤늦게 깨닫게 된다. 
 

6. 친밀감 대 고립감 (Intimacy vs. Isolation): 21-39세

나는 사랑할 수 있을까?


20-30대가 되면 큰 화두가 바로 파트너를 찾고자 하는 열망이다. 이 시기에 우리는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갖고자 하는 욕구가 상승하며, 이를 통해 친구들과 절친한 우정 관계를 맺기도 하고, 결혼을 통한 배타적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친밀감형성은 보통 이전 단계의 자신의 정체성 확립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통해 이루어진 자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나 삶의 목표가 유사한 사람을 찾고, 그들과 더 친밀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형성하길 원한다.즉, 계속해서 데이트 상대를 바꾸는 대신, 내가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는 한 사람과 헌신과 책임, 또는 희생이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한 장기적 관계를 지속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전 단계에서 정체성의 확립이 지연된 경우, 주변 환경 또는 사회적 압력에 의해 결혼을 선택하였을 때, 이는 큰 여파를 가져올 수 있다. 혼자였을 때 실수를 만회하는 것은 쉽지만, 정체성의 혼란이 지속된 상태에서 타인의 의견에 의해 결혼을 결정하거나 가족을 형성한 경우, 그 선택은 여러 사람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결별이나 이혼 등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잦은 실패를 하게 되면, 고립감이 형성되어 외로움과 공포의 감정이 발생하게 된다. 
 

7. 생산성 대 침체성 (Generativity vs. Stagnation): 40-65세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일인가?

40대 중년에 들어서면, 이때부터 우리의 관심사는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된다. 즉, 다음 세대를 이끌어 나가는 것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일들과 교육을 통해 생산성을 이루고자 한다. 생산성의 단계는 가족, 친구, 직장, 사회에 걸쳐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동안 자신이 이루어온 지식과 경험을 자신의 이익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좁게는 우리 가족에서부터, 넓게는 지역사회 및 국가에 공헌하고 기여하기를 바란다. 중년이 되면서 자식을 낳아 헌신적으로 키우고, 어린 학생들을 위해 멘토링을 하고, 사회봉사 활동이나 나눔을 실천하거나, 자신이 쌓아 올린 지식을 바탕으로 글쓰기 또는 강연 활동을 하는 것이 바로 생산성(Generability)을 확립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대로 자기중심적이고, 비생산적이며, 목표가 상실된 상태에서 어딘가에 갇힌 듯 본인이 사회에 기여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생산성 결여에 따른 불만족으로 침체(Stagnation)를 발달시킨다.

 

8. 자아통합 대 절망 (Ego Integrity vs. Despair): 65세 이후

내가 이룬 삶이 어떠했는가?

 
최근에는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노년의 시기가 이전에 비해 훨씬 길어졌다. 65세쯤 일에서 은퇴를 하더라도, 아직 10여 년 정도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이 쌓아 올린 업적들을 공유하거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이 시간상으로나, 기회면에서 많아지고 있다. 보통의 경우, 65세 이후 은퇴의 나이가 되면 그동안 자신이 달성해 온 업적들을 바탕으로 과거 자신의 모습을 평가하고, 스스로 성공적인 삶을 이끌어 왔다고 평가하면 자아 통합 (Ego Integrity)을 발달시킬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주관적인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 관계 만족, 건강 유지 등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도 인식을 발달시켜 스스로 재평가를 할 수 있는 것들도 포함된다. 만약 자신의 삶에 이룬 것이 많이 없다고 느끼거나, 목표 달성해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이들은 삶에 불만을 갖고 절망 (Despair)을 느끼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사회적으로는 부와 명예를 달성한 자신의 모습을 높게 평가할 수도 있지만, 가정에서는 고립감을 형성했다면 자신의 삶에 불만족을 느끼고 실패하였다고 평가하여 가족관계에 대한 절망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에릭슨은 이 시기가 다른 연령대의 타인과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이를 통해 통합적 관계를 발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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