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니와 윤언니 인연의 시작 - 대학원
제가 김언니를 처음 만난 건 2004년 24살 때 대학원 면접장이었습니다 (진짜 내년이면 20주년이네요. ㅎㅎ) 꽤 오래전 일이라 많은 기억이 사그라들었지만, 아직도 생생히 제 기억에 남아있는 건 각자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전철 안에서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그날 처음 만난 사이인 데다 둘 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조금은 어색했을지 모를 첫 만남이었는데, 김언니의 첫인상은 조용하고 진중했으며, 살짝 미소 띠며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우리 둘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년 동안 고생스러운 석사 과정을 함께 하며 무척 친해졌습니다. 언니는 학부전공을 바꾼 탓에 논문 주제도 달랐고, 서로 지도 교수님도 달랐지만, 우리는 함께 부모교육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수업도 같이 들으며 소위말해 '동고동락'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진행한 후, 밤을 새우며 과제를 준비하는 날도 있었고, 마음적으로 힘들고 고단할 때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2년 후 우리는 대학원 석사학위를 받고 졸업을 했고, 각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제가 부모님이 계시는 울산으로 내려가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도, 언니가 어느 날 캄보디아로 훌쩍 봉사활동을 떠났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뜬금없는 제안으로 우리 둘은 20대 후반에 유학준비를 하며 강남의 GRE 학원을 함께 다녔던 적도 있습니다. 그 사이 각자 엑스보이프렌드들과의 흑역사들도 공유했고요. ㅎㅎ 그렇게 우리 둘은 실수투성인 채로 방황하는 20대를 함께 보냈습니다.
30대가 되어, 제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온 후 우리의 물리적 거리는 멀어졌지만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은 적어도 우리 둘 사이에서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언니는 제가 유학을 떠나던 그날도 공항에 함께 나와주었고, 제가 고된 유학생활로 향수병에 시달릴 때도 한국 음식과 책들을 보내주며 늘 그 자리에서 저를 위로했습니다. 2013년 언니의 결혼식을 위해 잠시 귀국한 저는 제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케를 그녀에게서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2016년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우리 둘은 30대 중반의 비슷한 시기에 임신과 출산도 경험하였습니다. 김언니는 첫째 출산 후 박사과정을 시작하였고, 저는 박사 졸업 후 교수직을 시작했으나 육아 문제로 경단녀가 됩니다. 그렇게 우리 둘의 30대는 여전히 불안하고 좌충우돌이었지만 한 가지 변함없는 사실은 우리는 늘 서로의 곁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40대의 우리는 박사학위도 땄고, 결혼도 했고, 자식도 낳았지만 여전히 불확실한 중년의 미래를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자식을 낳고 키우며 워킹맘으로서의 고충을 나누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함께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빠질 수 없는 남편 얘기와 노쇠해지는 부모님에 대한 걱정도 함께 나누었구요. 그러던 올해 여름 저는 또 김언니에게 같이 블로그를 해보자는 뜬금없는 제안을 했고, 늘 그렇듯 그녀는 그 자리에서 "좋아" 한 마디로 저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저희는 이렇게 우리를 만나게 해 준 인연의 다리인 "대학원"이라는 주제를 밑바탕으로 조금 더 새로운 시작을 기획해 보려고 합니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늘 그 자리에서 언제나 "좋아" 한마디로 저를 믿고 지지해 주는 그녀가 있기에 어떠한 도전도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금은 늦되고, 화려하지 않으며, 우여곡절이 많은 아카데믹 연구인생들이지만, 많은 경험과 진심을 바탕으로 새해에는 조금 더 여러분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려고 합니다. 응원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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