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국 플로리다 사는 윤언니입니다. 오늘은 미국 아카데믹 직급 및 생존기를 제 실제 경험을 통해 좀 더 생생하게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예전부터 한 번쯤 꺼내고 싶은 주제였으나, 망설여지기도 했는데요. 왜냐하면 여전히 저는 현재의 자리에서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국에서 유학을 꿈꾸는 분들이나 (예비) 석박사분들이 계시다면, 일반적이지 않는 저의 이야기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저의 아카데믹 생존기를 한번 풀어볼까 합니다.
- 30대 미국 박사 도전
미국 박사를 떠나오던 2011년 제 나이 31살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겠네요 (나이가 나오나요? ㅎㅎ 지금부터는 제 만 나이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5년 직장생활 후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어요. 이미 학부 때 두어 차례 휴학도 했었고, 당시 직장생활을 하며 유학을 준비했던 탓에 GRE 및 토플 점수를 만드는데도 2년 정도 걸렸습니다. 늦은 나이에 유학을 결심한 이유는 석사 당시 한국의 대학원 생활 및 교수-학생간의 관계에 회의가 많았고,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 석사 졸업후 5년간 아동학 전공자로 어린이집 교사부터 시작해, 짐보리 본사 연구원, 한국정책연구소, 영재교육학술원까지 현장 선생님부터 민간기업 및 국책연구기관 연구원까지 다양한 직업을 거쳤지만, 다른 세상을 보고 싶다는 저의 목마름은 더 견고해져 갔습니다. 그래서 직장생활 중 주말에는 해커스 토플학원을 다니고, 스터디스룹을 만들고, 출퇴근 시간 전철에서는 GRE 단어를 외우고, 점심시간 30분은 라이팅 연습을 하며 본격적 유학준비에 돌입했고, 9월 말 10월 초에는 연속 두 번의 시험을 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일본으로 가서 GRE를 보는 투혼을 보였죠 (그때는 GRE Computer-Based 테스트를 보려면 일본으로 갔어야 했어요. 당시 한국한생들의 cheating이 문제가 되면서 한국에서는 일 년에 두 번 Paper Based 테스트만 허락되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어떤지 모르겠네요;;)
대학원은 Iowa State, Missouri-Columbia, Penn State, Minnesota, Connecticut, Florida State까지 6군데 지원했고 확실한 Assistantship 오퍼를 준 플로리다 주립대학으로 박사를 오기로 결정했죠. 어차피 재정지원 없이는 할 수 없는 게임이었기에 저에게 학교 네임벨류나 연구주제, 교수진 등 이런 조건들은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당시 영어를 정말 못했어요. 그냥 한국에서 평생 살고 제도권 영어교육만 받은 30대 직장인 딱 그 정도 영어 생각하시면 됩니다. 2월쯤 FSU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종로에 있는 1-1 영어학원에서 튜터 4번 만나서 스크립트 짜고 예상 질문 뽑아서 달달 외우며 준비했어요. 그리고 미국 교수들과 Skype로 새벽 4시에 면접 봤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그렇게 오퍼레터를 받고 저는 2011년 정말 무더웠던 여름 8월에 연고하나 없는 플로리다에 혼자 떨어지게 됩니다.
- 대학원 조교 4년: Teaching Assistant/Research Assistant (TA/RA)
생활회화도 어려웠던 저였지만, 8월부터 대학원 수업과 20시간 조교 생활이 시작되었어요. 정말 다행이었던 건 박사 4년 동안 Assistantship을 고민하는 상황은 없었다는 거죠. 저희 학과는 Family and Child Sciences (FCS), 현재는 Human Development and Family Science (HDFS)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일단 학부 수업이 많이 개설되어 있어요. 간호학과나 심리학과에서도 와서 아동발달, 생애주기발달 등과 같은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많았기에, 티칭이나 티칭조교를 할 기회가 많아서 여름학기에도 돈 떨어지는 걱정 없이 매 학기 학비면제 및 생활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진심 처음에는 짧은 다섯 줄 영어 이메일 하나 학생들한테 보내는 데도 3-4시간 걸렸습니다. 지금도 약간 그런 버릇이 남아있어서, 이메일 짧은 한 줄도 읽고 고치는 편인데, 제가 영어 라이팅을 배웠던 방법은 다른 조교나 교수들이 쓰는 글을 바탕으로 응용해서 쓰는 거였어요. 절대로 한국말로 쓰고 영어로 고치는 방법은 쓰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배운식으로 영어를 쓰다보면 말은 통하더라도 한국식 영어가 될 수 밖에 없고, 저는 미국사람들이 진짜 쓰는 말과 글을 배워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실제 미국인들이 쓰는 영어를 계속 읽고, 카피하고 내 걸로 바꾸고, 연습하며 글쓰기 시간을 3시간, 2시간, 1시간으로 줄여나갔어요. 2013년에는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를 통해 미국인 남자친구도 만났구요 (지금의 제 남편이기도 합니다 ㅎㅎ). 회화 배우는 데는 현지인 만나는 거만큼 좋은 게 없다고들 하죠? 글쎄.. 뭐 제 영어가 영원히 현지인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처음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한 건 맞을 겁니다. 말씀드렸듯이 첨에 워낙 못했으니까요..ㅎㅎ
- 조교수 2년: Assistant Professor
박사 졸업을 앞둔 2014년 말과 2015년 초, 저도 잡서치를 시작합니다. 대학원 지원할 때처럼 6-7군데 지원서를 보냈던 것 같아요. 이건 제 스타일이기도 한데, 저는 주변의 친구들처럼 양적으로 몇십 개씩 지원하는 걸 잘 못하더라구요. 맞는 잡을 찾은 것도 힘들지만, 지원하는 곳에 맞게 커버레터도 바꿔야 하고, 추천서도 부탁해야 하는데, 그만큼 에너지도 없거니와 내용을 딱 보면, 내가 해온 것과 그들이 찾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아는 이상 지원서를 보내는 것도 의미 없다고 생각해서 자체 필터링을 좀 하는 편인데요. 이것이 절대 좋은 방법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일단 지원하시고 필터링은 상대에게 맡기는 것도 방법입니다.
당시 남친과는 어느새 2년 넘게 만나던 상태였고, 제 나이도 30대 중반, 제가 여친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우리 인연에 대한 의리는 장거리가 가능한 플로리다와 조지아에 있는 학교들을 우선으로 지원하는 것이었어요 (그 놈의 의리가 뭔지..ㅋㅋ). 아무것도 안되면 비자 문제로 어차피 한국 돌아가야 하니 제가 31살에 미국 유학이라는 겜블링을 할 때처럼, 마음을 비우고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에만 집중하며 지원서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8월 여름 졸업을 앞둔 2015년 6월, 논문 디펜스를 마친 다음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어요. 전화영어 울렁증도 있고, 모르는 번호는 안받는 스타일인데, 그날은 무슨 이유에선지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기 넘어 "I am xxx, are you still intereted in the xx position?"라고 하더군요. 미국은 보통 가을학기 교수채용이 전년 하반기 11-12월에 시작해, 늦어도 해당년도 1월쯤에는 지원이 마감됩니다. 저도 그 타임라인에 맞춰 서류를 보냈고, 이메일로 안됐다고 답장 주면 양반이고, 아무 연락이 안 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시간이 지났고, 논문 디펜스에 집중하던 터라 "뭐.. 무슨 포지션?" 순간적으로 제가 지원한 학교를 떠올리지 못했어요. 얘기를 나눠보니, 제가 지원했던 조지아에 있는 Fort Valley State University 학과장이 전화를 직접 한 거였습니다. "지원한 조교수 직업에 아직 관심이 있냐고?" “Of course!! I just finished my defense successfully. I am in Florida and I can visit you!"라고 아주 적극적으로 응했습니다. 2주 후 정식 캠퍼스 인터뷰 초청을 받았고, 7월말 면접 후 8월 오퍼레터를 받고 9월 1일 자 Tenure-Track Assistant Professor로 임용이 됩니다.
아..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가 제 인생의 최고 상승점이었던 것 같아요. 마냥 기뻤습니다. 4년 전 어학연수 가야 하는 영어실력으로 박사 유학을 와 졸업 직후 생각지도 못했는데 조교수 채용이라니요?! 부모님도 지도교수님도 이제 졸업하고 뭐 할래? 하는 분위기였는데 내가 교수로 일하게 됐다니 마냥 행복했습니다. 게다가 남친이랑도 롱디 가능한 3시간 반 거리.. 한국서는 서울 대구간 거리지만 미국서 세시간 반은 먼 거리도 아니었죠. 하지만 인생은 늘 Up and Down이 있는 법, 롤러코스터 같은 제 인생에 상승곡선이 있었다면 다음 차례는 뭘까요? 당연히 하강곡선이겠죠. 2017년부터 시작된 제 커리어 인생 하강곡선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들려드릴게요.
2024.05.04 - [브라보 토크룸 (Talks)] - 미국 아카데믹 생존기(2): 미국 조교수에서 시급 $15 연구원?! (Ft. 경단녀, 워킹맘, 전업맘, 경력단절)
2024.05.28 - [브라보 토크룸 (Talks)] - 미국 아카데믹 생존기(3): 시급 $15불 연구원에서 연구교수로 다시 일어서기까지
2024.09.20 - [브라보 토크룸 (Talks)] - 미국 아카데믹 생존기 (4): 연구교수 vs. 데이터 분석가 (ft. 이직, 연봉협상, 실제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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