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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토크룸 (Talks)

미국 아카데믹 생존기 (4): 연구교수 vs. 데이터 분석가 (ft. 이직, 연봉협상, 실제연봉)

by Dr.Yun in FL 2024.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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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에서 연구인생을 살아가는 윤교수입니다. 오늘은 제가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겪어낸 애달픈 미국 직장에서의 이직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해요. ㅎㅎ
 

나이 40.. 포닥 생활 2년.. 내 앞날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풀타임맘으로 경력단절이 생긴 후 40대에 다시 시작한 포닥 생활. 하지만 포닥이란 직책은 퇴직 후 연금 혜택도 없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임시직이기에 정규직이 되기 위해선 다시 한번 잡마켓으로 나가야 했죠. 
 
제가 있던 포닥 자리는 처음부터 아주 위태롭게 시작된 포지션이었어요. 50% 리서치 펀딩과 50% 학과 펀딩으로 만들어진 임시 1년직. 처음엔 그래도 기뻤습니다. 박사학위 졸업 후 조교수로 미국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임신-출산-육아로 한동안 포기해야 했던 커리어와 연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어서 저에겐 둘도 없는 좋은 기회였죠.
 
2021년은 여전히 코로나의 여파로 재택근무가 이루어지던 시기, 아이들을 집에서 보살피는 가족들도 많았지만, 저는 아들을 킨더에 보내고 포닥으로 복귀를 했습니다. 우리 둘 다 마스크를 쓰고 아들은 학교에서, 저는 직장에서 하루를 보냈죠. 저는 아들 픽업 시간 전까지 정말 성실히 일했습니다. 
 
저희 센터에는 당시에 저처럼 데이터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이 없었어요. 보통 포닥이라 하면 교수 밑에서 트레이닝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그땐 저를 트레이닝을 해줄 연구 멘토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이는 역으로 생각하면 제 입지를 견고히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죠. 그래서 저는 제가 맡은 프로젝트에서 Statistician으로 자리매김하며 성실히 혼자 자라나기 시작했어요. 
 
2년차가 되어서는 50% 학과 펀딩이 끊어지면서, 다시 한번 위기가 찾아왔지만 성실히 일한 덕에, 센터 디렉터가 학과에서 티칭을 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었고, 75% 연구 펀딩과 25% 티칭으로 2년 차도 간신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직장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면 어떻게든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내 연구 센터는 보통 연구 펀딩, 즉 Soft money로 운영이 됩니다. 직급이 연구교수여도 펀딩이 없으면 자신의 월급을 100%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는 얘기죠. 그렇게 포닥 2년 차가 되면서 제 앞길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커져갔어요. 계속 프로포절을 쓰고 연구펀딩을 따와야 하는 상황에서, 지원한 펀딩들이 줄줄이 리젝을 당하고 있었거든요. 
 
재정적 위기와 함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여러 페컬티들이 잘려나갔고, 협업 중이던 교수과 센터장과의 불화, 센터 미래의 불확실 요소들이 불안과 갈등 요소로 작용하며 저도 이직을 고려해야 할 순간에 직면하게 됩니다.
 

조직에서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순간..이직을 고려해야 할 때

 
이미 작년말부터 센터 디렉터와의 대화를 통해, 제가 현 센터에서 연구교수로 남게 될 가능성을 두고 여러 펀딩을 지원 중이던 상황에서, 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센터 디렉터에게는 자신이 공공연히 “Work Daughter”부르는 학생이 하나 있었어요. 제가 포닥으로 조인하기 전부터 디렉터의 수족처럼 일하고 있던 학생이었죠. 제가 포닥을 시작했을 땐, 석박사 통합 과정을 시작한 1년 차 학생이었어요.

저는 늘 minority로서의 제 현 위치를 잘 직시하고 있었기에,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심하게 실감해본 적이 없었어요. 단순 인종차별이라기 보단 이 둘의 특별한 관계 때문에 불필요한 일에 일일이 대응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계속 생기기 시작합니다. 또한 두 페컬티들이 디렉터과의 갈등으로 일을 그만두면서 이미 그들의 많은 일들이 제게로 다 넘어온 상황이었죠.

저는 ISTJ, 누구보다 책임감 있고 성실히 스타일이예요. 누가 내 일의 퀄리티에 부족감을 느끼거나 무책임하게 일하는 것을 굉장히 불편해하는 타입으로 제게 주어진 일에서 만큼은 완성도 있고 프로페셔널하게 일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연구 프로포절과 예산을 작성하며, 디렉터가 나에 대해 평가하는 속마음, 그리고 나와 박사 1년 차 학생을 같은 저울에 놓고 저울질하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아.. 이곳은 내가 더이상 있을 곳이 아니구나. 나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곳에서 내가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다"라고 느끼게 되죠. 
 

칼집 속의 칼은 휘둘려서 무서운 게 아니라 칼의 존재 자체로 효과가 있다.

 
확실한 시그널을 받았으니 뒤도 옆도 볼 것 없이 저는 바로 잡서치를 시작했어요. 남편의 직업상 타주나 타 지역으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현재 살고 있는 지역 내에서 박사학위를 쓸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전업맘이 된 후 여러 잡을 지원 해보며 알았지만 이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고만 있을 수 없었죠.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때 마침 신기하게도 제 눈에 딱 걸린 잡 포스팅이 하나 있었어요. 제가 현재 있는 곳은 플로리다 주도이다 보니, 여러 정부 기관들이 몰려있습니다. 그중에서도 Department of Children and Family (DCF), 제 전공과 가장 관련이 있는 정부부처에서 Data Analyst, 연구분석가를 찾고 있더군요. 돌아볼 것도 망설일 것도 없었습니다. Indeed라는 리쿠르트 사이트를 통해 지원 신청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누르고 바로 지원을 시작했어요.

1차 면접은 온라인 프리 스크리닝 같은 간단한 과정이었어요. 학위가 있는지, 경력이 3년이상이지 아주 간단한 질문만 하고, 면접을 잡으라는 노트를 받았다며 면접 날짜를 바로 잡자고 하더군요. 2차 면접은 두 명의 면접관과 함께 정부부처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이루어졌습니다. 사실 당시만 해도 미국 아카데믹에서만 경험이 있던 저였기에 정부 일은 분위기가 어떤지, 어떤 식으로 면접이 진행되는지 많이 생소했어요. 그래서 면접 준비도 평소에 예상 질문을 짜고 무수히 연습하던 기존 캠퍼스 인터뷰와는 달리 큰 기대 없이 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으로 면접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처음부터 두 면접관이 저에게 무척 호의적이더군요. 둘이 번갈아 가며 정말 많은 질문을 했는데, 제가 어떤 대답을 하든, 감탄사를 연발하며 호응하기 시작했어요. 한시간 정도의 면접이 끝나니, 한 면접관은 나를 따라 나와 개인적 질문까지 하며 가는 길까지 배웅을 해주더군요. “아… 이거 될 수도 있겠는데…?” 느낌이 좋았습니다.

면접 후 라이팅 샘플을 보내고, 추천서를 보낼 차례. 이미 3명의 레퍼런스까지 완벽히 라인업을 해둔 상태였으니 자신감 있게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가 진행되기 시작하더군요. 직접 내 보스와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겁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 센터 디렉터에게는 아무 얘기 없이 진행 중인 면접이었는데, 이러다 양쪽 일 다 놓치는 건 아닌지.. 왜 내 보스랑 얘기를 해야 한다는 건지… 솔직히 걱정이 되었어요. 

알고 보니, 정부잡은 최종 오퍼를 주려는 지원자에 한해 현재 고용주와 직접 대화를 통해 제가 이곳에서 현재 일하고 있는 게 맞는지, 그리고 제가 다른 일을 찾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이직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계약상의 문제 등을 피한다고 하더군요. 저도 이번에 잡지원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어요.

그렇게 보스에게 의도치 않게 잡밍아웃(?)을 하게 된 저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솔직하게 독대를 했어요. “나는 ㅇㅇ이와 동급 레벨이 아니며, 40대 중반으로 이젠 안정적인 잡이 필요하다.”라고요. 저희 디렉터는 "너를 ㅇㅇ이와 동급으로 생각한 적이 없고, 그렇게 느끼게 했다면 미안하다."라고 사과를 먼저 하더군요. 일단 제 의사는 전달했고, 면접은 계속 진행되었으며, 결국 저는 정부 데이터 분석가 포지션 오퍼를 받게 됩니다.
 
연봉이 염려가 되었는데, 저는 $80,000불만 넘기면 옮기겠다는 의사가 아주 확실했어요. 그런데 $85,000불을 제시하더군요. 그후 센터 디렉터와 연봉협상에 들어갔습니다. 오퍼 받은 것보다 높게 불렸고, 결국 $90,000불에, 원타임 보너스, 학회 트레블 펀드까지 더한 카운터 오퍼를 받게 됩니다.

제가 쓴 아래 주립대학 교수 학과별 연봉 글을 기준으로 제가 받은 오퍼는 제 전공분야의 조교수 월급에 웃도는 급여수준이었기에, 저는 오퍼를 받아들였고, 연구교수 자리로 올라설 수 있었죠. 이번 이직과 연봉협상을 해보며 "칼을 칼집에서 꺼내어 휘둘려서 무서운 게 아니라 칼의 존재 자체가 위협적인 것"처럼, 일을 그만두어서  대등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만 둘 수도 있다는 생각이 상대로 하여금 나를 존중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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